1박2일 다산코스

강진여행 추천코스

1박2일 다산코스

맛과 소리, 즐거움과 믿음까지 함께하는 감성여행1번지 강진!

강진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찬란했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소로서 깨끗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역사까지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입니다.
강진군 푸소(FU-SO)체험은 농촌의 정(情)을 바탕으로 도시민의 감성을 자극하며 농가체험을 통해
훈훈한 정과 감정을 경험하며 감성여행 1번지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미지명


다산박물관

주소

강진군 도암면 다산로 766-20

전화번호

061-430-3911
  • 이용시간 : 9시~18시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이용시설 : 성인(2000) 청소년(1000) 군인(1000) 어린이(500))

다산기념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인물로 선정된 다산 정약용 선생의 18년 유배지인 강진 유배생활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곳이다.
다산기념관은 다산선생이 생전에 남긴 친필 간찰과 저술, 주변 인물들의 자료를 수집·보관·전시하고 있으며, 다양한 디지털 자료들로 다산선생을 친밀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어린이와 가족·청소년·공직자와 단체가 참여하여 강진에서 다산선생의 생활을 느껴볼 수 있도록 다산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산초당

주소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전화번호

061-430-3911

강진만이 한눈으로 굽어 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중 10여년 동안을 생활하시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 6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 하였던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인해 붕괴되었던 것을 1957년 복원하였고 그 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다산선생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백련사

주소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전화번호

061-432-0837

백련사의 본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이며 조선후기에 만덕사로 불리우다가 현재는 백련사로 부르고 있으며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명종(1170년)때 원묘국사 요세에 의해 중창되었다. 고려 후기에 8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8대사가 머물렀던 도량이며 고종 19년(1232년) 에 원묘국사 3세가 이곳에서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킨 유서 깊은 명찰이다.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겹처마인 다포식 건물이다.

백련사 사적비 (보물 제1396호)

이 비는 대웅전의 북서쪽으로 약 50m 떨어진 빈터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 숙종 7년(1681) 5월에 세운 것으로 비문의 백련사의 중수, 원묘국사의 행적과 백련결사에 관한 내용 등이며 뒷면에는 이 비의 건립에 참여한 72명의 승려명과 인명이 음각되어 있다.

백련사 원구형 부도 (유형문화재 제223호)

백련사 내에 있는 부도 중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나 탑신이나 기단부에 당호 또는 기타 명문이 없어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 탑신은 우너구형이며 탑신 당산쪽 사방으로 연꽃무늬의 연주문띠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특이한 기법이다.

백련사 대웅전 (유형문화재 제136호)

대웅전은 조선 후깅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부에는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앞면 2개의 주두에 용두를 장식하여 단청과 함게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는 다포식 건물이다.

오감통

주소

강진군 강진읍 오감길 2

전화번호

061-430-3074

'음악인들의 사랑방이자 놀이터인 음악창작소, 공연과 영화가 펼쳐지는 푸르른 잔디광장, 강진의 맛을 한 곳에 모은 먹거리장터, 백년 간 강진한정식의 전통을 이어온 한정식체험관 등이 마련되어 있다.강진오감통에는 몸을 들썩이는 화려한 공연, 눈과 입이 즐거운 산해진미, 특별한 재미가 넘치는 체험거리, 지친 일상을 달래는 힐링여행, 건강한 식탁을 만드는 친환경 로컬푸드가 있다.

먹거리장터

지상 1층 규모로 강진의 대표적인 브랜드 음식인 회춘탕과 김대중대통령 밥삼, 병영 돼지불고기, 황칠오리 등 강진을 대표할 수 있는 특화음식점

한정식체험관

100년 전통의 역사를 이어온 지역 한정식업체가 운영하는 곳으로 강진한정식

음악창작소

지상 2층 규모의 음악전용 공간으로 1층에는 음악 스튜디오와 음악카페가 위치하며 2층에는 전문 공연장과 게스트룸이 있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이 잔디광장에서 펼쳐진다.

고려청자박물관

주소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길 33

전화번호

061-430-3312
  • 체험인원 : 1회 체험 70명 가량 가능 (71명이상은 조 편성 후 순차 실시)

  • 신청 및 예약 : 현장 신청 및 온라인·전화예약 (체험 3일전까지만 예약 가능)

  • 문의 및 안내 : 사무실 061)430-3733, 청자빚기 체험장 061)430-3735

전남 강진군 대구면과 칠량면 일대에는 고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고려청자를 만들었던 가마가 위치해 있으며,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과 발전, 쇠퇴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청자의 보고寶庫’이다. 이 지역에서 지표조사된 청자요지窯址는 총 188개소이며,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청자요지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이러한 중요성과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1963년 국가사적 제68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고려청자박물관은 강진 청자요지와 고려청자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ㆍ계승하기 위해 1997년 개관하였으며, 다양한 전시ㆍ교육 프로그램으로 고려청자 연구의 메카 역할을 하고 있다.

고려청자와 강진

강진의 청자가마터는 우리나라 고려시대 도자기 역사를 대표할 만큼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곳이다. 고려시대 50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청자를 만들었으며, 그 생산품은 왕실과 귀족, 사찰 등지에서 사용되었다. 2007년 태안 죽도 해저발굴에서는 탐진 (耽津:강진의 고려시대 지명)이 쓰여있는 목간(木簡)이 발견되어 2만 3천여 점의 고려청자의 생산지가 강진임을 증명해주었다.

민화뮤지엄

주소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길 61-5

전화번호

061-433-9770~1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 이용요금 : 성인(5000) 청소년(4000) 어린이(3000)

  • 주차요금 : 무료

한국민화뮤지엄은 국내 최초의 민화 전문 박물관인 영월 조선민화박물관의 자매관으로 2015년 5월에 강진군 대구면에 건립되었다. 전통 민화의 계승 발전을 위해 체계적인 연구와 수집은 물론 전시와교육, 전문 서적의 출판, 맞춤형 체험학습, 포럼, 공모전 등을 추진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4,500여 점의 민화 유물 중 250점을 상시 순환 전시하고 있으며 관람객은 언제나 전문 해설가의 재미있는 민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매년 개최되는 공모전 수상작과 현대 민화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여 민화의 시대적 흐름을 한 자리에서 관람하실 수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민화체험 및 재미있는 4D영상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성인전용 춘화전시실이 2층에 마련되어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가우도(저두)

  • 가우도

주소

강진군 도암면 신기리 26-4

전화번호

061-430-3312
  • 저두 출렁다리 : 438m / 도보 10분 소요

  • 망호 출렁다리 : 716m / 도보 15분 소요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로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에 해당되고 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머리에 해당된다하여 가우도라 부르게 되었다. 강진 대구면을 잊는 출렁다리(438m)와 도암면을 잊는 출렁다리(716m)에 연결되어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생태탐방로로 <함께해(海)길>(2.5Km)는 산과 바다를 감상하며 걷는 천혜의 트레킹 코스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섬에는 약600여년 전부터 서쪽 부근에 고씨(高氏) 20여 호가 자리잡고 살다가 떠나갔고, 현재는 경주김씨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산 정산 북쪽8부 능선에 평평한 터가 동서로 길게(약200m) 있는데 옛날 말 달리던 터로 '말달리'라고 불리고 있는데, 가우도 주민들이 어린시절 달리기 등을 하며 놀이터로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마을 뒷산 동쪽 중간지점 후박나무 군락지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당(堂)집(서낭당)을 마련하고 매년 정원 대보름에 마을 주민들이 제사를 모셔 왔는데 6.25이후 중단되었으며 지금도 그 터가 숲속에 붕괴된 채로 흔적이 남아 있다.
매년 봄이면 마을 어귀 우물가에 마을을 상징하던 수령 500년 이상되던 좀팽나무 아래에서 풍어(豊漁)를 비는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으나 나무가 고사된 후 행하여지지 않고 있다.

농촌민박(FUSO)

홈페이지

https://www.gangjin.go.kr/fuso/experience/farming
  • 대상 : 중고등학생, 일반관광객

  • 체험내용 : 농어촌체험, 영랑감성체험, 청자체험, 다산체험, 민화체험 등

  • 일정 : 1박2일과 2박3 중 선택

  • 참가방법 : 신청자와 코스 협의 후 운영

  • 문의 : 강진군청 관광과 061-430-3312~4

푸소(FUSO)란, 필링-업(Feeling-Up), 스트레스-오프(Stress-Off)의 줄임말로 농촌집(푸소체험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훈훈한 정과 감성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영랑감성학교(시문학파기념관)

주소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4.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

전화번호

061-430-3186~3188
  • 이용시간 : 9시~18시

  • 휴무일 : 1월 1일, 설날, 추석날

  • 이용요금/ 주차요금 : 무료

'시문학파'는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을 전개했던 문학 동인회의 명칭이다. 시문학파기념관은 1930년 3월 5일 창간한 <시문학>을 통해 활동했던 영랑 김윤식, 용아 박용철, 정지용, 위당 정인보, 연포 이하윤, 수주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 보 등 당대를 대표하는 9인의 시인을 가리는 한국 최초의 유파 문학관이다. 이들 9명의 동인이 1세기여 만에 시문학파기념관이란 공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특히 국내에 여러 문학관들이 있지만, 이렇듯 특정 문인이 아닌 유파 전체를 한자리에 아우르는 예는 강진의 시문학파기념관이 전국 최초이다. 시문학파 시인들이 사진과 유품, 친필, 저서 등이 전시되 있으며, <시문학>지 원본을 비롯해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 한용운의 <님의침묵>초간본(1926),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등 국문학사에 길이 빛날 희귀본들이 소장되어 있다. 제1종 전문박물관이기도 한 시문학파기념관은 <2017년 대한민국 최우수 문학관>에 선정되 국내 문학관 운영의 롤모델로 부상하였다.

사의재

  • 영랑생가

주소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

전화번호

061-433-3223

사의재(四宜齋)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은 곳이다. 사의재는 이곳 주막집(동문매반가)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네가지를 올바로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산은 생각과 용모와 언어와 행동, 이 네가지를 바로하도록 자신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생각을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를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언어)을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을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할 것을 스스로 주문하였다. 사의재는 창조와 희망의 공간이다. 사려깊은 주막 할머니의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얘기에 자신 스스로 편찬한 「아학편」을 주교재로 교육을 베풀고, 「경세유표」와 「애절양」 등을 이곳에서 집필하었다. 다산은 주막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강진군은 오랜 고증을 거쳐 동문 안쪽 우물가 주막터를 원형 그대로 2007년에 복원하였다. 현재는 동문매반가(주막)와 한옥체험관을 운영중에 있다.